영화 ‘허니와 클로버’, 반짝반짝 빛나는 우리들의 시간

한없이 빛나는 보석도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차이가 난다. 목이 메어오는 아름다운 선율도 듣는 이의 귀에 따라 그 떨림의 크기가 다르다. 하지만 세상에 태어나 인생이란 것을 부여받고 숨을 쉬고 생명을 이어가는 우리들에게 있어 단 하나의 완벽하고 아름다운 가치를 부여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아마 ‘청춘’이 아닐까 싶다.

청춘에 관한 이야기는 참으로 많다. 한 사람 한 사람 생김이 다르듯 그 형태가 다르기도 하지만,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사람’이기에 그 밑바탕은 비슷하게 느껴지곤 한다. 청춘이란 말은 참으로 다양한 형태로 여기저기에서 언급되어 이젠 식상할 듯하지만 그래도 참 좋다.

봄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가로수 길을 걷는다. 어깨를 덮을 만큼 소복소복 떨어지는 꽃눈들. 그 장면은 봄이란 장면 속에 매년 존재하고, 봄날의 어느 날이든 하루에도 수어 번 눈앞에 피어나는 흔한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 순간 그 생명력과 아름다움, 봄의 상징이 된 그 여린 분홍 빛깔에 ‘봄이 왔다’라는 것을 실감하고 감탄하고 감동하듯, 청춘이란 단어는 귓가에 수없이 반복해도 매번 싱그럽고 아름답고 그리고 무엇보다 아쉽고 그립니다.

벚꽃이 한순간에 차가운 비와 함께 사라지기에 벚꽃을 볼 때마다 우리는 마음속 깊이 미묘한 애틋함을 가지게 된다. 그처럼 청춘이란 이름은 길고 긴 인생의 상반기에서 어리고 미숙한 상태에서 준비 없이 나타나 순식간에 사라지기에 애틋하고 그립고 아쉽기 그지없다. 사람들은 그 시절이 짧기에 더욱 아름답고 소중하다고 하지만, 나는 종종 이 시기를 2배로 늘리고 앞 혹은 뒤의 시간들을 삭제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봄이 두 번 오고, 벚꽃이 좀 더 오랜 시간동안 피어 있다고 사람들이 그 꽃의 아름다움을 망각하게 될까? 아름다움의 본질이 변하지 않는 이상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부피는 조금 줄어들진 몰라도 아름다움이란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 같은데?

허니와 클로버

허니와 클로버는 청춘과 연애에 관한 영화이다. 수없이 많은 영화들이 그러하듯 청춘과 연애는 참 예쁘고 귀여운 어린아이처럼 무슨 옷을 입고 있든, 어떠한 표정을 짓고 행동을 하든 한없이 사랑스럽기만 하다. 귀여운 아이의 환한 미소에 주변 모두가 미소를 짓듯 청춘과 연애는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런 미소 속에 한없이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있다. 그림천재소녀 하구, 그녀를 좋아하는 수줍음 많은 타케모토, 괴짜 천재 복학생 모리타, 연상녀를 사랑하는 순정 스토커 마야마, 그런 마야마를 사랑하는 순정 스토커 아유미.

다양한 캐릭터들이 각자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사랑하고 열정을 쏟아붓는 것이다. 천재소녀 하구는 그림에,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떨림과 혼란의 감정에 온몸과 정신을 맡긴다. 순정 스토커 마야마는 자신이 열렬히 사랑하는 연상녀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스토커로서 가장 우아한 방법으로 그 우아함과 순수함을 잃지 않는 깨끗한 사랑을 퍼붓는다. 그리고 그런 마야마를 또 다른 순정 스토커 아유미는 예쁘고 아련하고, 한편으론 조금 구슬프게 사랑한다. 꿈을 향해서든 사랑을 위해서든,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충실하며 한없이 사랑한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갓난아기처럼 이리보고 저리보고 안아보고 업어보고 세상에서 가장 따스하고 예쁜 웃음을 지어보이며 조건 없는 애정을 쏟아 붓는다. 설사 이것이 돌아오지 않는 혼자만의 메아리로 끊임없이 나에게로만 돌아오는 애정일지라도, 상대방은 알아듣지 못하는 모스 부호를 수없이 홀로 부르짖다 언젠가 스스로를 참지 못하고 메이데이 메이데이 메이데이… 구조를 요청하게 될 지라도.

다행히도 허니와 클로버 속 주인공들은 참 착하다. 혼자만의 한없는 애정을 쏟아 부어 스스로는 비극적이고 비련할지라도, 옆 사람의 구조 요청은 그 섬세하고 사려 깊은 귀로 빠르게 듣고 가련한 옆 사람의 손을 잡아 도움을 준다. 하구와 타케모토, 모리타, 마야마와 아유미는 서로에게 손을 건넨다. 너의 사랑을 응원하고, 너의 꿈을 응원하고, 너의 삶을 응원한다. 청춘의 순수함은 서로를 조건 없이 응원하고, 커다란 비눗방울처럼 아름답지만 연약했던 그들은 조금씩 몸을 단단하게 만들고 마음의 형체를 짓는 것에 눈을 뜬다.

비눗방울은 한없이 떠다닌다. 그 형체가 연약하고 힘이 없어 아름다움을 안고 있지만 어딘가에 부딪히지 못하고 부유하다 어느 순간 터져버린다. 터져버리는 그 순간까지 딱히 비명한번 지르지 못하고 물거품처럼 몇 방울의 비눗물의 흔적만을 남긴 채 사라진다.

청춘은 한없이 아름답지만 연약하고 힘이 없기에 많은 순간순간을 직면하지 못하고 도망친다. 좋아하는 그녀의 웃는 모습만으로도 일주일이 행복하지만 감히 그녀의 앞에 서서 ‘좋아해’라 말하지 못한다. 처음으로 느낀 감정과 경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놀라워하고 두려워하고 혼란스러워 하며 그런 감정이 나타났을 때 어디론가 숨기위해 한없이 도망친다. 혼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다락방에 몸을 넣어 다리를 끌어안고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린 알 수 있을까? 지금 도망쳐 버리면 그 모든 것이 없었던 일이 되어 버린다는 걸… 함께 길을 걷고 맛있는 오므라이스를 먹으며 나누었던 소소한 대화들과 초승달처럼 동그랗게 휘어진 환한 미소를 짓는 너를 만났던 일마저도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이 되어 의미가 없어진다는 걸.

힘없는 비눗방울처럼 우리는, 그리고 그들은 모든 것이 두려웠다. 아름답고 빛나는 청춘의 한복판에 서 있지만, 당장 한 치 앞을, 당장 내일의 일을 알 수 없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두려움이었던지. 내가 앞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지, 지금의 선택이 1년 후 10년 후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지금 내가 느끼고 행하려는 것이 진정 원하는 것이 맞는지… 이 모든 이유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하고 두렵고 불안하게 온몸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더욱 두려운 것은 이러한 고민을 한없이 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고 가차 없이 흘러버린다는 것…

벚꽃처럼 한철 눈부시게 피어나는 아름다움 같은 청춘. 한없이 연약하고 앞길의 두려움으로 가득 찬 우리들… 하구도, 타케모토도, 모리타도, 마야마도, 아유미도… 그리고 나도… 서로의 응원 속에서… 그리고 그렇게 흘러가 버리는 시간 속에서 어찌 보면 똑같은 단 하나의 것을 찾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청춘은 짧고 아름답지만 앞으로의 삶은 더욱 위대하다는 것을… 지금 순간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내가, 나의 삶이, 나의 마음이 소중하다는 것을..

좋아해… 좋아해…

우리는 오늘도 소리친다. 누군가에게 혹은 나에게 ‘좋아해’라고. 설사 나에게, 나의 꿈에게, 나의 마음에게 전하는 고백일지라도 우리는 큰 용기를 가지고 고백을 한다. 내가 있었고, 네가 있었고, 그리고 모두가 있었던… 우리 모두가 똑같은 것을 찾아 헤맸던 그 아름답고 기적 같은 나날들을 떠올리고 그리워할 오늘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문화예술 전반에 관심이 많으며,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영화, 전시회, 책 등 문화와 함께하는 삶에 대해 글을 쓴다. http://blog.naver.com/toyeyeskh